도그빌(Dogville, 2003)

누군가가 추천을 해 주었고, 교보에서 DVD를 할인하여 팔길래 구매를 하여 보았다. 이 영화를 보고 한 단어가 계속 맴돌아서 그에 대한 생각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이 영화에 대해서 인간의 추악함과 오만함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감싸고 있는 형태에 더 눈길이 갔다.

(스포일이 있습니다.)

이 영화의 시작은 ‘톰’의 주민회의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주민들에게 도덕적 가르침을 위하여 그는 ‘실례(illustration)’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는 실례를 찾기 어려워했고 때마침 선물과도 같이 ‘그레이스’가 마을로 들어오게 된다.

영화의 도입부와 마지막에서 이 영화 전체가 커다란 실례임을 알 수 있다. 먼저 영화 자체가 실질적인 장소에서 촬영 된 것이 아니라 세트장에서 촬영이 되었고 세트장은 최소한의 시각적 가이드만 존재한다. 굳이 세트장을 이용한 이유는 마을의 실례를 표현하고자 함이 아닌가 싶다. 더 넓게는 이 영화가 커다란 실례임을 암시하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영화 내내 그레이스가 톰, 그리고 도그빌의 실례인것 처럼 보이지만 결말에서는 오히려 톰이 그레이스의 실례가 된 것을 알 수 있다.

실례는 시간적 미래의 개념을 내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톰이 실례를 원했던 이유는 마을 사람들의 교육을 위해서이고 또한 자신의 소설을 위해서 였다. 둘 다 미래의 실전을 위한 준비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즉, 실례는 이후에 유사한 사건이 존재 해야지만 의미가 있다. 허나, 톰 그리고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그 실례의 주체가 생각과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톰은 실례를 통하여 미래의 일을 대비하고자 했지만 그의 미래는 존재하지 않았다. 실례가 아니라 현실이었던 것이다. 톰의 생각에 그레이스는 실례였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관용을 베풀지 않아도 상관이 없을 것이라 생각 했을 것이다. 예시일 뿐이지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을 실례처럼 다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 했다.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영화는 하나의 실례이다. 비단, 이 영화 뿐만이 아니라 영화, 아니 영화를 넘어 대부분의 예술 작품들이 현상과 개념에 대한 실례라고 생각한다. 관객은 영화를 보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영화는 실례이고 우리의 현실은 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허나, 우리 스스로가 톰이 아니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단지 영화의 내용은 실례일 뿐이고 우리는 이 영화를 교훈삼아 현실에 적용일 시키면 되는 것인가? 만약 영화가 실례가 아니라 현실이라면, 우리의 죽음은 그리 멀지 않았다. 영화를 보고 ‘교훈적인 영화다.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결국 톰과 그리 다르지 않다. 왜냐면 이러한 자세는 톰이 그레이스를 실례로 생각 했듯이, 영화를 실례로 밖에 이해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현실로써 받아 들여야 톰을 벗어 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현실속에 있는 도그빌을 찾아내고 불태우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어떻게 보면 영화를 능동적으로 봐야 한다는 이야기일 수 있다. 영화는 예시가 아니다. 현실이다.

이 영화를 보고 생각난 음악이 하나 있다.

분명 이 음악은 우리 사회의 단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전체가 아니다. 그리고 오디오 속에 갖혀있다. 그렇기 때문에 실례로 받아들이고 거리를 둘 수 있다. 하지만 톰에게 그레이스는 실례가 아니라 현실이었음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p.s. 실례의 의미는 단지 예술의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더 넓게 생각한다면 공학적 해법들도 실례에 해당한다. 그 이유는 논문, 튜토리얼, 메뉴얼 등의 공학적 솔루션들은 미래에 일어날 실질적인 사건을 돕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논문, 가이드 등의 내용에서 담고 있는 내용이 앞으로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 안에 있는 솔루션들은 의미가 없어진다.

p.s. 니콜 키드먼은 영원했으면 좋겠다.